
'세상이 멈췄다. 딱 한 놈만 빼고...'
쏟아지는 빗줄기와 천둥소리 속, 의족을 끄는 아이의 위태로운 걸음. 그리고 그 아이의 눈을 단단히 가린 채 어디론가 이끄는 여인. 영화 <초능력자>는 불쾌한 궁금증과 서늘한 섬뜩함을 동시에 보여주며 시작합니다. 불편한 몸을 가진 소년의 '잔혹 동화'인 줄로만 알았던 이 이야기는, 이내 우리가 알던 상식을 비웃듯 전혀 다른 흐름으로 진행되죠.
개봉 전만 해도 당대 최고의 비주얼을 자랑하는 강동원과 고수의 캐스팅으로 관객들의 '눈호강 기대치'를 한껏 끌어올렸습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 화려한 기대를 처참하게 뭉개버릴 만큼 파격적인 모습이 기다리고 있었죠.
당시 한국 영화계에선 보기 드문 '초능력'이라는 소재를 들고 나온 이 문제작. 과연 호불호의 늪을 건너 우리가 마주하게 될 진실은 무엇일까요? 지금부터 그 기묘한 초인들의 세계로 빠져 보겠습니다.


<초능력자> 영화 줄거리
시선이 닿는 곳, 모든 것이 멈춘다
세상을 제 입맛대로 멈출 수 있는 남자, '초인'(강동원 분). 그는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조종하는 특별한 능력을 지녔습니다. 하지만 그 대가는 가혹했죠. 어린 시절 자신의 능력을 두려워한 부모에게 버림받고 스스로 괴물이 되기를 자처한 그는, 이름도 없이 세상과 섞이지 않으며 철저히 고립된 삶을 살아갑니다.

통제되지 않는 단 한 사람
평범하지만 성실하게 살아가는 청년 '규남'(고수 분). 그는 작지만 따뜻한 일터 '유토피아' 전당포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전당포를 털러 온 초인과 마주치게 되죠.


초인은 평소처럼 눈을 부릅뜨며 사람들을 조종하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규남에게만은 그 능력이 통하지 않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난 인간을 마주한 초인은 당황하고, 이 혼란 속에서 규남에게 소중했던 유토피아 사장이 목숨을 잃게 됩니다.
괴물과 괴물의 처절한 추격전
사장의 복수를 위해, 그리고 미친 듯이 질주하는 초인을 막기 위해 규남은 그를 쫓기 시작합니다. 초인은 수많은 사람을 인형처럼 조종해 규남을 공격하고, 모든 것이 초인의 뜻대로 흘러가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규남에게도 비밀이 있었습니다. 그는 초인 같은 타인을 지배하는 능력자는 아니었지만, 치명적인 부상을 입어도 금세 회복되는 놀라운 치유 능력을 지닌 '초인적인 몸'의 소유자였죠. 정신을 지배하는 자(초인)와 육체로 버티는 자(규남).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두 존재의 외롭고도 잔혹한 싸움이 시작됩니다. 과연 그 싸움의 끝에는 무엇이 남아있을까요?


<초능력자> 감상 포인트: 왜 이 영화는 '문제작'이 되었나
[호(好)] 한국형 어반 판타지의 신선한 시도
당시 한국 영화계에서 '초능력'은 다루기 까다로운 소재였습니다. 자칫하면 유치해질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 영화는 화려한 시각효과 대신, 서울의 낡은 전당포와 골목길을 배경으로 지극히 현실적이고 서늘한 판타지를 그려냈습니다. "만약 내 이웃이 괴물 같은 능력을 가졌다면?"이라는 질문을 던지며 일상적인 공간을 순식간에 공포의 무대로 바꾼 연출은 지금 봐도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불호(不好)] '비주얼 깡패'들을 데리고 만든 기괴한 비극
가장 큰 불호 포인트는 역시 '기대했던 장르와의 괴리'입니다. 강동원과 고수가 나온다고 했을 때, 관객들은 세련된 액션 블록버스터를 기대했죠. 하지만 결과물은 시종일관 눅눅하고, 기괴하며, 때로는 불친절하기까지 한 잔혹극에 가까웠습니다. 멋진 액션 대신 고수의 처절한 '몸빵'과 강동원의 광기 어린 눈빛만 남았으니, 안구 정화를 기대하고 극장을 찾았던 관객들에겐 그야말로 배신감이 느껴질 만한 전개였습니다.


[미스터리] 설명되지 않는 불친절함, 그 매력과 한계
이 영화는 친절하지 않습니다. '초인'은 왜 그런 능력을 가졌는지, '규남'은 왜 통제되지 않는지, 그 기원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지 않죠.
- 매력: 설명이 없기에 두 존재의 대결이 마치 신화나 우화처럼 느껴지며 독특한 여운을 남깁니다.
- 한계: 개연성을 중시하는 관객에게는 "그래서 왜?"라는 질문만 남긴 채 끝나는 허망한 영화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파격적인 결말은 이 영화의 호불호를 가르는 결정적인 정점을 찍습니다.
감상평
'괴물이 되고 싶지 않았던 괴물, 그리고 진짜 괴물'
세상 속의 '규남' vs 세상 밖의 '초인'
이 영화가 단순한 초능력 대결물 이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두 남자의 '삶의 태도'가 극명하게 대비되기 때문입니다.
규남은 비록 가난하고 평범하지만, 함께 일하던 동료나 '유토피아' 전당포라는 울타리 안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기꺼이 세상 속으로 스며든 인물입니다. 반면, 초인은 압도적인 힘을 가졌음에도 그 누구와도 섞이지 못한 채 세상 밖으로 밀려난 유령 같은 존재죠.
눈을 마주치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자가 정작 '평범한 일상' 하나를 갖지 못해 고립되어 가는 과정은, 그가 부리는 초능력보다 더 서늘하고 처량하게 느껴집니다.


약자의 반란인 줄 알았으나, 포식자의 교체였다는 허무함
우리는 흔히 이런 영화에서 '평범한 인간(약자)'이 '초능력자(강자)'에게 결국엔 승리하고 만다라는 기대를 합니다. 하지만 <초능력자>는 그 뻔한 기대를 보란 듯이 배신합니다.
절대 죽지 않고 좀비처럼 살아 돌아오는 규남을 보며 우리는 깨닫게 되죠. 그는 결코 약자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초인보다 더 압도적인 생존 본능과 육체를 가진, '또 다른 형태의 더 강한 괴물'이었을 뿐입니다.
"넌 나를 절대 만나지 말았어야 됐어"
영화 중후반에 초인이 규남에게 했던 말이지만, 초인을 만나면서 규남의 능력이 더욱 강력하게 발현되는 계기가 되었으니 저 말은 오히려 초인 스스로가 규남을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말이 아니었을까요?
'세상에 섞이지 못한 '초인'과 세상을 지켜낸 '괴물'의 처절한 대결
강동원과 고수라는 눈부신 피사체를 데려다가, 이토록 눅눅하고 불친절한 이야기를 완성했다는 점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반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비주얼의 향연을 기대했다가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지만, '세상에 섞이지 못한 초능력자의 고독'과 '누구보다 평범해 보였던 남자의 괴물 같은 생명력'이 충돌하는 그 기묘한 파열음은 꽤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비주얼에 속아 들어왔다가, 인간의 본성에 대한 허무함에 젖어 나가게 되는 영화. <초능력자>였습니다.
